커플링:[호현/탬쫑] 작가:단하나의빛(제로퍼센트) 제목:타락천사 연재장소:희인애,블로그-http://ahxhwnstkfkd@naver.com 작가 왈- 안녕하세요,단하나의빛입니다. 또다른 닉넴은 제로퍼센트이기도 하구요. ㅎㅅㅎ 그나저나 이번작이 샤이니팬픽 첫작입니다. 첫작이니 만큼 부족하고 서툴지만 그냥 읽을꺼 없어서 읽는거라고 생각하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타는 애교로 봐주시고요 블로그 서로이웃 신청 정말좋아합니다! 종현총수가 널리 퍼지는 그날까지~~~!! 즐독해주세요.^^ 알다시피, 완결본이 아닙니다. 연재는 연재장소로 들어오셔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완결이 나면 텍파 올려요. -- Start. 연세대 해부학교실은 미스터리 사건들의 재부검을 전담하며, 독립된 수사권한을 가진다. 01 김종현. 사람들은 끝없이 공존하는 지구 자전축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남들과 조금 다른 개성을 지니고, 그 속에서 서로가 만나 결혼이라는 하나의 집합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해 나가며 제 후손을 나아 후손이 성장할 때까지 끊임없는 먹이사슬과 같은 애정을 쏟아. 그런 사람들 속에 살아간다는 것은 지극히 짜증 나는 일이며 하는 족족 간섭에 목이 메는 그들의 행동에 진저리가 날 정도이니 한마디로 나는 그런 사람들 속에서 살아갈 수가 없어. 애초 태생부터 그들과 나는 전혀 닮은 구석이 없었으며 조금 다르다는 것은 개성으로 인정받지만 나는 다르기보다 그들과 틀렸다고 해야지 맞는 말이야. 자체가 그런 놈이니 사람과 상종할 수 없는 놈. 오늘도 꽉꽉 숨통을 조여오는 사람들 속에서 홀로 얼굴을 찡그린 채로 서서 난 그 아이를 찾지. 그런데 사람이라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보아도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끝없이 이어지는 기나긴 삶 속에서 가족이라는 형성체를 만들고 그 속에서 살아가다 또 다른 생명을 낳는다는 것은 일류 최고의 중요한 수단이지.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위해 복잡하게 짜인 법칙과 같은 인생의 고리관을 풀지 않고서 계속 이어 나가려는 것일까? 아마 두려워하는 걸 꺼야. 자신이 마지막 명을 다하고 세상과 안녕을 할 때 아무도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고 그 사람의 존재를 금방이라도 잊어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가슴이 아픈 일이거든. 그런데 그 사람이라는 존재가 더럽고 추악해진다면 어떨 것 같아? 생각만 해도 끔찍해하고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기 바쁠 거야. 하지만 다를 것 없어. 사람과 잔인함, 그리고 더럽다는 말은 전혀 반비례하지 않거든. 나라는 사람은 짧다면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너희보다 많은 것을 깨닫고 느낀 괴물이야. 그들의 잔인함으로 난 살아가고 생명을 이어가는 괴물이니까. 그런데 더 신기한 건 괴물도 사랑을 한다네. 나는 말이야 그게 제일 무서워. 사랑을 느낀다는 게 너무 두렵고 잔인해. 더럽고 추악한 내가 감히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무서워. 하지만 내가 말한 더럽고 추악한 나 자신이 어느새 사랑에길들여져버렸어. 2015년 6월 29일 창문을 열어 확인한 밖은 예상보다 더 따듯하고 생명력이 넘치다 못해 모든 것들이 살아 숨을 쉬듯 행복하게만 보여. 며칠 햇빛을 보지 못한 탓에 눈을 찌푸리며 가만히 내 손을 들여다보는데 나도 모르게 끔찍해서 눈을 감아버렸어. 앙상하게 마른 손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푸른 잎을 달고 서 있는 나뭇가지보다 더 형편이 없어 보여 저절로 눈이 찌푸려지지. 창틀 옆으로 놓인 두 개의 작은 화분 안에 심어져 있는 로즈메리는 이미 시든 파처럼 축 늘어져서 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었어. 그게 꼭 나와 닮은 것 같아서 안쓰러운 마음에 마르고 거칠어진 손을 들어 한 잎을 떼어 입으로 집어넣었는데 시큼한 맛이 미각에 닿는 혀 가장자리 미뢰(맛봉 오리)에 찌르르한 고통이 느껴져 금방 뱉어버렸지. 이런 회색으로 반짝거리는 바닥을 더럽혔으니 외삼촌에게 혼쭐이 날지 몰라. 외삼촌은 정말 다정하고 따듯한 분이시지만 잘못을 할 때는 누구보다도 엄격해지시고 무서워져. 그런 외삼촌 밑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사람은 잘못한 일에 인정할 줄 알아야 하며 그 잘못에 사죄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웃기지 않아?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어째서 흘러가는 강물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기나긴 세월 동안 그 아까운 시간 동안 잘못을 뉘우치는 행동만 가리킴을 받았는지 모르겠어. 어쨌든 재빠르게 두루마리 휴지를 풀어 물건을 잡듯이 이물질을 덮어 들고 휴지통에 넣으면서든 생각은 2015년과 내가 태어난 1990년도는 크게 변함이 없다는 거야. 여전히 두루마리 휴지를 쓰고 있고 처음 식물을 살 때 담겨 있는 갈색 플라스틱 분도 변하지 않았어. 세상은 변하지 않고 제자리걸음일 뿐인데 변하는 건 나뿐인가봐. 나는 하루하루 나 자신이 달라지는 것을 느껴. 점점 손은 말라가 굳어져 가고 내 눈동자는 탁해져 색소가 옅은 황갈색을 띠고 있는데 내 가족 중 혼혈아는 없었고 그렇다고 눈이 나빠 렌즈를 끼운 것도 아닌데 말이야. 밝은 갈색 머리는, 그 아이가 예쁘다고 해주었던 내 머리카락은 윤기 없이 축 늘어져 가끔 빠지기도 해서 많이 놀랄까야. 그런데 이제 곧 그 아이를 만날 생각에 눈을 감아도 번쩍 눈이 떠지고 밥을 먹다가도 허공에 젓가락질하기 일쑤야. 아, 어떡하지. 지금도 가슴이 미친 듯이 뛰어서 숨조차 쉴 수가 없어. 이런 걸 뭐라고 하지? 딱히 떠오르는 단어는 없지만 아마 정말 아름다운 단어일 거야. 너는 내게 있어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소중한 사람이니까 말이야. 그런데 소중하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껴주고 간직하고 싶은 게 소중하다는 의미라면 얼추 맞는 단어를 선택한 것 같기도 하다가 한 번도 난 너를 아껴준 적이 없는 거 있지. 한국에 가서 다시 너를 만나면 꼭 아껴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조금 우울해진 기분에 열었던 창문을 다시 닫고서 커튼까지 쳐버려. 어두워서 나 자신조차 확인할 수 없지. 나 자신을 볼 수 없다는 건 정말 불행하고 무서운 건데 그렇지 않아. 나 자신을 보는 순간이 더 끔찍하니까. 내가 남들과 다르게 살 수밖에 없음의 계기를 마련해준 것은 그때였을 거야. 바야흐로 7년을 거슬러 올라가서 그날은 내가 무척이나 싫어하는 찌는 여름이었지. 교복 셔츠 옷깃이 땀이 흐르는 목에 붙는 것이 싫어 흰 반소매 티셔츠에 교복 바지를 입고서 야자도 안 하고 일찍 나와 외진 골목으로 하교하던 중에 누군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거야. 난 당황해서 매고 있던 가방까지도 내리던지고 새로 산 신발이 흘러나오는 피 때문에 흥건히 적셔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쓰러져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서 뻗어져 있는 팔을 들어 손목에 맥을 짚어보니 미약하게 뛰고 있었지.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남자의 얼굴에 뺨을 때리며 확인하는데 그 얼굴이 너무나 내가 잘 알고 있는 그 사람이였던거지. 운도 지지리 없게 그 남자는 우리 부모님을 살해하고 평생 공들여서 연구한 자료를 들고 도망간 인간이었어. 그런데 얼마 전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놈인 거야. 얼굴을 확인하자 분노로 가득 차 떨리는 손으로 그놈의 등에 손을 올리는데 별안간 녀석이 벌떡 일어나 앉더니 얼굴에 핏줄이 터져 눈, 코, 입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신음을 뱉어냈어. 그리고 숨이 막힌 듯 제목을 쥐고서 눈을 감았는데 똑똑히 들었어. '도대체…무슨 짓을 한 거야.' 글쎄…?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나도 모르겠어. 두려움으로 가득하여 녀석을 보는데 놈은 이미 죽었고 시체는 우연히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장바구니를 던지고 뛰어와 저를 이상하게 바라보며 신고를 해서 경찰로 넘어갔는데 죽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거야. 죽음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까지 했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어. 과다출혈로 죽기에는 흘러내린 피가 적었고 빈혈도 없으니 쇼크상태를 일으킬 수도 없었지. 배에 찔린 상처는 장기를 피해 가서 큰 상처도 아니였대. 그럼 그 남자는 왜 죽은 것일까. 상황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남자의 피를 흰 반소매 티셔츠에 적신 채 취조실에 들어가 앉자 앞에 무서운 형사가 앉아 꽉 진 손을 테이블 앞으로 내리면서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었어. '네가 죽였지? 네 부모님 죽인 새끼라서 죽인 거 아니냐고. 사건 당시 곁에는 아무런 흉기도 없었고 목격 당시 네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 흉기가 될 뻔한 건 없었어. 그렇다고 사내의 목을 손으로 조른 흔적도 없었지. 어떻게 된 거야. 이건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이지. 어떻게 죽였냐?' 억울하기보다도 혼란스러운 정신을 가다듬기 바빠서 나는 아무런 말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었어. 그제야 티셔츠에 묻은 피가 굳어서 고약한 냄새가 올라와 불쾌했지. 냄새가 그렇게 지독했느냐고? 아니. 그 녀석의 피가 묻은 게 지독하게 불쾌했지.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형사는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무관하고 있으니까 답답하고 화가 났는지 테이블을 쾅- 내리치며 일어났어. 그러자 옆에서 노트북으로 타이핑을 써내려가던 여경사가 놀라서 말렸지만, 형사는 내 먹살 을 잡아올려 그 큰 주먹으로 뺨에 내리꽂았어. 생각보다 아파서 엎어져 끙끙거리고 새우등처럼 허리를 굽혀 고통을 줄이는데 그러다고, 그 형사가. '끔찍한 괴물 새끼.' 그때부터 난 괴물이 되어 버렸던 거야. 가끔 비가 오는 날이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악몽을 꿔. 꿈에서 그 형사가 나에게 말한 그 괴물 새끼라는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귀를 울리며 나를 괴롭혔어. 그래서 난 항상 곁에 두통약을 챙기고 있지. 결국, 증거물확보를 못 하자 서에서 결국 나를 풀어 주었을 때 그 젊은 형사는 나를 죽일 듯이 바라보았지. 알고 보니까 그 죽은 놈의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였던거야. 그런 남자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난 웃었어. 난 절대로 비웃거나 그런 의미에서가 아닌 미안하다는 의미에서 웃었지만 욱한 남자가 당장에라도 나에게 달려와 주먹을 내리칠 것 같았어. 옆에서 말리는 동료 형사들 때문에 제길 욕을 뱉으며 땅을 찼지. 싱긋- 웃고 돌아선 나는 그 뒤로 학교에서 퇴학처분이 내려지고 모아둔 돈을 가지고 외삼촌 댁으로 미국 비행기를 탔어. 외삼촌은 아직 미혼이라 나를 받아 줄 수 있었거든. 그리고 벌써 외삼촌 댁에서 지낸 지 7년째야. 이제는 과거를 딛고 한국으로 향하려 마음먹은 이유는 바로 그 아이 때문이야. 나의 하나밖에 없는 친구를 찾아서 말이야. 그리고 몇 년 전 나를 죽일 듯이 저주하던 그 형사님도 보고 싶고 말이야. 어두워진 방안에 잠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나라는 인간은 이십이 년 동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아왔는지 모르겠어. 금술 좋기로 유명했던 우리 부모님은 몇 년 후 연구를 시작하더니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지. 서로 욕을 하며 폭력을 쓰기도 했고 고가의 도자기들이 깨지는 날이 많았어. 야구방망이로 맞아서 눈이 시퍼레진 엄마는 매일 나를 보고 원망하셨어. 모든 건 너 때문이라고. 사실 우리 부모님을 죽인 그놈은 내 구세주였을지 몰라. 어느 순간부터 나까지 구타하는 부모님 곁에서 구해주었으니까. 내가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였어. 모두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했거든. 매의 눈처럼 나를 따라오는 그 시선들이 무서워 난 도망을 친 거지만 다시 한번 그 상황이 온다면 난 도망가지 않을 거야. 내자신을 좀 더 아끼고 사랑하기로 했거든. 그래야만 그 아이를 사랑해줄 수 있으닜까 말이야. 어? 외삼촌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종현아, 외삼촌이다. 내일 한국 비행기 아침 7시로 예약해놨는데 정말 떠날 거니? 외삼촌 무척이나 섭섭하구나. 오랫동안 정도 많이 들었는데 말이야. 그리고 몇년 전 사건은 깨끗이 잊어. 넌 새로 태어난 아이처럼 한국에 가면 되는 거야. 하나밖에 없는 이 외삼촌이 해줄 수 없는 게 없어서 미안하구나." 종현은 문밖으로 들리는 나이 든 외삼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어느새 문으로 다가가 벌컥 연 뒤 눈물을 훔치고 있는 외삼촌의 굽은 허리에 맞춰 고개를 숙여 소매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아직도 아이같이 해맑기만 한 종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는 그동안 종현이 어떤 고통과 시련을 겪으면서 살아왔는지 아주 잘 알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못했다. 보통사람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집에 꽉 틀어박힌 채 빛이라고는 안 들어오는 공간에서 그 작은 몸을 움츠리고 떨었을 아이가 혼자서 한국으로 가 몰매를 받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설레어 밤잠도 설치고 온종일 얼굴에 웃음이 떠나가지 않는 것을 보고 큰 결정을 내린 종현의 외삼촌이다. 그러나 종현은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학교를 나가지 못한 탓에 말하는 것이 약간씩 느리고 요즘 아이들이 쓰는 단어도 크게 잘 알지는 못한 탓에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그것도 걱정이고 혹시라도 7년 전 사건과 같은 상황이 일어날까봐 못내 걱정이다. 하지만 이런 밝은 종현에게 평생 집안에만 숨 쉬게 하는 건 너무 안쓰럽다. 티 없이 맑고 옅은 색의 눈동자는 너무 탁해져버렸지만 그 안에 숨어져 있는 아픔들을 종현이 그토록 만나고 싶어하는 그 아이에게 치유받기를 원한다. "외삼촌…. 나는 말이에요. 남들이 나를 살인자라고 말할 때 아무렇지도 않은 거 아니야. 남들이 나에게 돌멩이를 던지며 악마라고 욕할 때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지만 그 아이만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그 아이가 한 번만 나를 향해 웃어주기라도 한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었거든요. 그 아이는 나를 만나줄까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나를 잊어버린 건 아닐까? 라는 생각에 걱정 돼서 잠도 못 이루는데 그것도 행복해요. 그 아이만 생각하다 잠이 든다는 건 너무 행복한 일이거든요. 한국에 가서 그 아이랑 친해지면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게요. 그 아이가 나를 잊어서 기억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나를 버려도 난 포기하지 않고 꼭 그 아이랑 돌아올게요. 그러니까 외삼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괴물이 사랑을 느껴서 마법같이 저주가 풀려 사람으로 돌아올 때까지…." "종현아, 잊지 말아라. 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아이야." 02 최민호, 그리고 김기범. "아무래도 그사람, 두부 쪽이 이상한 거지? 맞다니까 내친구가 아니라고 하는거 있지. 넌 어디다 내기할래? 네가 맞다고하면 그 새끼 기 팍 죽어서 아무런 말도 못할 텐데." "쓸데없는 일에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다. 그건 그렇고 이번 실험과제 준비물을 잘 되가냐?" 하필이면 시금치에 소금간을 팍팍 묻힌 시금치나물을 입으로 집어넣었는데 그런 말을 하냐, 기범은 금방이라도 넘어올 것 같은 속을 진정시키며 신경질적으로 민호를 바라보았다. 작고 물컹물컹한 개구리의 뒷다리를 씹어먹는 기분이다. 작은 종합병원의 원장인 자신의 아빠, 그 밑으로 첫째아들은 내과의사, 둘째아들은 외과의 레지던트. 셋째인 저는 해부 과를 지망했다. 집안에서는 내 선택에 다들 도끼눈을 하고서 당장 의료과로 바꾸라고 했지만 내 의지는 워낙 확고했다. 사람을 살리는일, 죽은 사람을 해부하는일.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일에서 솔직히 고민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흰가운을 펄럭이며 왼쪽 주머니에 모나미 볼펜 한자루 넣어두고 오른쪽 바짓주머니에는 PDA를 넣어 다니면서 의사놀이를 꿈꿔왔었다. 다만, 그 꿈이 어떠한 계기로 인해 무너졌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아직 내게 멋진 꿈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한참 희망대학을 지망하고 중요한 결정의 순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처음에는 두 눈으로 보지 못해서 못 믿겠다고 했지만 난 어머니의 차디찬 시신의 모습을 보고서 후회를 했다. 합리화시키면서 우겼던 말이 되레 화를 입어 돌아온 격이었다. 건강하게 아픈 곳 없이 살아온 어머니가 심장발작으로 돌아가셨다고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경찰 쪽의 의견이었고 매스컴에 이사실이 보도되기를 껄끄럽게 생각하시던 아버지는 조용히 일을 무마하려고 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난 어머니가 심장발작으로 돌아가시지 않았음을 진즉 이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주위에서는 충격을 받은 것이라며 처음에는 격려와 도움을 아끼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시선들은 점차 싸늘해져 갔다. 세상이 이렇게 넓고 밝은데 인간은 좁고 어둡다. 자신에게 다가오는것을 두려워하고 내면의 패륜아처럼 자신의 처소를 만들며 그렇게 사람들을 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해부학과에 들어가려고 했던 것을 말이다. 사실, 부검은 싫지만 사람들을 해부하면서 왜 죽었는지 왜 억울하게 죽었어야 했는지 그 아픔을 피해자 보호자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 더이상 세상에 나 같은 미친놈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개구리가 도저히 안 잡히네. 망할 놈의 개구리 같으니라고, 눈만 땡글땡글 존나큰게 너 닮았어. 그래서 고집도세고 빠른가 봐. 잡으려고 하면 펄쩍펄쩍 뛰면서 도망가니 어떻게 잡아, 그걸." "시끄럽고 이번에 네가 내기 걸었다는 그 건 말이야. 두부 쪽이 이상한거 맞아. 두부 부위 쪽에 음식물을 유지하게 해주는(뺨을 치아에 가깝게) 협근쪽이 부러져 있었고 음식을 삼킬 때 작용하는 설골상근 쪽이 무언가로 막혀 있었어. 어떤 미친놈이 정신 나가지 않고서야 목구멍을 틀어막고 음식물을 삼킬 때 동원되는 협근을 부러트리지는 않을꺼야. 분명히 새디스틱하고 싸이코틱한 인물이 일으켰을 가능성이 크지." "맞아, 내 말이! 그런데 그쪽 변호사는 뭐라고 했지?" "음식물로 인한 기도 막힘으로 인해 폐에 공기가 순환되지 못하여 사망. 이라던데?" 민호는 관심 없는 말을 뱉듯이 심드렁히 내뱉고는 하나 남은 방울토마토를 입안에 쏙 집어넣어 굴렸다. 치아에 부딪히면서 터지는 방울토마토의 육즙은 마치 피와 같았다. 그런 것 때문에 민호는 방울토마토를 좋아하지 않지만 새빨갛고 동그란 그형태를 볼 때면 누군가 가 생각나 습관적으로 입 안에 넣고 굴렸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그 아이를 생각한다.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누가 음식물을 그렇게 처먹다가 그렇게죽냐, 그런 확률은 말이야. 길가다가 우연히 동전을 떨어뜨렸는데 운안좋게 하수구 구멍으로 쏙 들어갔다가 그 안에서 뛰놀고 있던 쥐새끼 머리빡이 터져서 죽을 확률이라고." "과장하기는. 난 일어날 테니까 먹고 와." "아니야, 다 먹었어. 오늘따라 왜 이렇게 혼자 급하게 나가? 보는 사람이 불안할 정도로 말이야." "… 불안하긴, 그냥 좀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서 그래." 무슨 일? 하고 물어보려던 기범은 마지막으로 입안에 소시지를 욱여넣으며 자리에 털고 일어났다. 급식 판을 들고 민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기범은 이번에 또 어떤 시구가 왔기에 저러나 싶었다. 시신을 해부하는 일에서는 둘째가면 서러운 최민호이지만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건 최민호는 시신을 두려워한다는 것. 차갑고 냉소적인 겉모습과는 달리 그 안에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고 있다는것을 기범은 알기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민호는 교내식당에서 나와 그늘이 늘어져 있는 벤치에 앉았다. 다음 해부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여유로운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옆을 앉은 기범은 두 팔을 벤치 뒤에 짚은 채 곁눈질로 민호를 바라보았다. 짙은눈썹, 오뚝 쏟은 코. 그리고 빨간 입술. 뭍 여자 가슴들을 떨리게 하기 충분한 베이스다. 이런 훈훈하고 보기 좋은 얼굴을 가지고서 미팅은 죽어라 안 하는 그가 신기한 기범이었다. 흘러가는 말로는 길거리 캐스팅도 받아본 적이 있더라 하고 심지어는 최민호가 저렇게 여자를 만나지 않는 이유는 게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소문이 돌자마자 남학생들은 민호에게 더욱 더 큰 관심을 보였다. 교수가 인정하는 실력에, 받쳐주는 학벌과 집안. 잘생긴 얼굴. 남자에게까지도 탐이 난듯하다. 그리고 기범은 진짜 궁금해서 묻기로 했다. "너 진짜 게이냐? 어떻게 여자 만나는 꼴은 못 보겠어." "내가 이 나이에 남자 후장이나 노리는 그런 늑대 같은 놈으로 보여? 웃기지도 않는 소리." "에- 네 나이가 몇 살이라고 그러냐? 그럼 나도 늙었다고 하게. 스물 두살이면 연애하기 딱 좋은 나이잖아. 그건 그렇고 진짜 남자한테도 관심이 없어?" 처음에 게이라는 말이 나올 때 살짝 당황했던 민호가 어느새 평소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웃기는 소리하지 말라며 짙은 눈썹을 찡그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나이가 늙었다고 치부하는 행동에 기범은 덩달아 흥분했다. 최민호와 동갑인 저는 그럼 똑같이 늙었다는 말씀?! 그리고 진짜 남자한테 관심이 없나 하는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었다. "없어, 아니 있는 게 이상한거지." "이상한건 아니지. 너도 남자시구 해부해봐서 알잖아. 시발 나는 진짜 깜짝 놀라서 그날 화장실을 몇 번이나 간 것 같다. 어떻게 진짜 후장이 그렇게 파열되었는지 끔찍해. 결국, 그 건은 동성 성폭행으로 인한 복상사(腹上死)였잖아." "아무튼, 난 게이 아니야. 이상한 소문 내기만 해봐." "그럼…바이냐?" 빡- 하고 가차없이 기범의 뒤통수를 쳐 내린 민호가 쯧- 혀를 찼다. 그리고 한 번만 그런 장난을 치면 용서하지 않을 거라며 으름장을 놓고 자리를 떠났다. 민호의 떠나는 모습을 보던 기범은 그저 아쉬움의 입맛을 다졌다. 분명히 저는 바이 일 거라고 내기에 걸었는데 말이다.아…. 아까운 내 이마원 깨졌다. * 이진기. "이 형사님 오셨습니까! 일단 주민 때문에 일찍 폴리스라인(경찰통제선)을 쳐두었고요, 시신은 안에 있습니다." "그래? 그러면 얼른 들어가 있을 것이지 왜 나와 있어." "그게…. 좀 잔인해서." "후- 김형사.이일 처음 해보는것 도 아니고 아마추어같이 왜 이래? 살과 육탈전을 일으키는 일이 바로 우리 일이야. 잔말 말고 얼른 들어와." 유난히도 더운 날씨에 짜증이 난 진기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거칠게 닦아내며 체크무늬의 반소매 난방을 벗어 자신이 방금 무자비로 골목길로 끌고 들어온 차 위에 올려두고서 폴리스라인(경찰통제선)을 들춰내고 사건장소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자동으로 코를 막은 진기는 뒤에서 구역질하는 김형사를 두고 들어왔다. 침대 시트 위에 커다랗게 피 문양이 그려져 있었고 시신의 몸만이 덩그런히 놓여 있었다. 그렇다면…. 머리는? "김형사! 감식반 불렀어? 시신의 머리는 어디 있는 거야." "안 그래도 감식반을 불러서 확인 중인데 시신의 머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다고 합니다. 척측쪽을 지나 손목을 신전 시켜주는 근육인 수근신근이 완전히 부러져서 팔을 쓸 수가 없는 것으로 보아 범인은 피해자를 죽이기 전 피해자로부터 반항을 막기 위해 방망이 같은 무게가 나가는 물건으로 내려친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아, 그리고 대흉근 또한 심하게 손상되어서 폐를 눌러 범인이 굳이 토막살인을 하지 않았어도 전에 사망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머리를 토막살인한 범인의 싸이코틱한 살인사건이라고 할수있죠." "그래서. 피해자의 신원은?" "38세 주부 김주연. 남편은 출장으로 이틀 후에 집으로 온다고 되어 있는 상태였고요, 중학교 2학년 딸아이가 있네요." "남편한테는 연락해두었어?" "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또 뭔데." 안 그래도 구역질이 나는 곳에서 오래 있어서 그런지 진기는 아파져 오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살인사건을 해결한지 두 시간조차 되지 않아서 벌써 또 사건이 터졌다. 그런데 이번엔 미스테리한 사건이란다. 경찰로는 사건정리가 될 것 같지않아 연세대학교 해부학교실에 시신을 보내야 할 것인데 그곳에 가면 누군가의 얼굴을 볼 생각을 하니 진기는 화가 솟구쳤다. "남편이 외도중이랍니다. 알고 보니 출장을 간다고 하고 여자와 그동안 함께 있었다고 하는데,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전화를 끊어버리니 다들 미치려고해요." "그런 미친 새끼가 어딨어. 지 부인이 죽었다는데 얼굴도 안 내밀어? 당장 그곳으로 가게 차 대기시켜." "네?" 탁- 하고 김형사의 말은 끝까지 듣지 않고서 자신의 키를 던져준 진기는 피해자의 시신에 다가갔다. 그러자 끔찍한 살덩어리 냄새와 사망추적시간이 꽤 흘렀는지 안에서 구더기 같은 것이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머리가 없는 시신의 목 부분에서는 출혈이 멈추지 않았고 저항을 했는지 침대 시트자 락을 움켜진 여자의 가느다란 손이 안쓰러워 보인다. 그리고 가느다란 손가락에 껴 있는 결혼반지에 진기는 울컥 치 쏟아오는 무언가를 집어삼켰다. 타락해버린 천사는 어떻게 구제할수 있는지알아? 그건 바로 사랑이야. 사람은 사랑에 한없이 약해지고 여려지는데 그건 타락해버린 천사라고 할지라도 변하는건 없어. 크고 아름다운 날개가 꺽이고 그안에 수많은 상처들이 곪고 피가난다고해도 그들은 한번 사랑에 빠지면 헤어나올수가 없게되지. 바로 사랑을 알아버린 김종현처럼. 03 미국에 있을때는 한국으로 가는 설렘임에 밤새 잠도 뒤척이고 늘상 넋을 놓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막상 비행기가 상륙하고 이륙한 다음 공황으로 나왔을 때의 기분은 상쾌했어. 쾌쾌묵은 서울공기를 마시다가 고향으로 내려온 기분 같아서 7년 동안 변한 한국을 눈으로 쫒기 바쁜데, 한국의 사람들은 몇 년 동안 빨라도 너무 빨라져 버린거 있지. 내가 미국으로 가기 전에는 분명 찢어진 청색 바지라던가 하늘하늘한 니트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주위에는 온통 허벅지를 꽉 조여오는 숨막히는 검은색 바지들과 상체를 조금만 숙여도 보일듯한 아슬아슬한 옷을 입고 다녀. 내가입고 있는 이옷이 지극히 평법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에게는 그 옷이 더 평범하게 느껴지는 듯 길거리를 걷는 동안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기도 했어. 난 시선들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걸었지. 처음 한국으로 발을 들일때 가장먼저 든 생각은 사람들이 키가 정말 크구나 라는 생각이였지. 내키는 170을 넘지 못한 168센티였으니까 말이야. 워낙 소식을하고 음식물을 소화하는 기관이 약했기 때문에 많이 먹지 못해서 작은 건가? 라는 생각을 하다 내가 생각해도 실없는 생각인 것 같아 헛웃음 터트렸어. 외삼촌이 미국에서 아는 지인분에게 연락을 해놨다 길래 손에 들린 쪽지를 보고 길을 건너 택시를 잡아 탑승했는데 아까부터 택시가 가라던 길은 가지 않고 빙빙 돌거나 몇 번이나 보던 주택들이 보이고 속도가 참느려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한국은 그동안 변한게 너무도 많으니까 말이야. 결국 생각지도 못한 큰 돈을 내고 택시에서 내리니까 그제서야 든 생각은 택시가 느렸던 것은, 빙빙 돌았던 것 모두 한국이 무엇으로 변해가고 있는지 알려줬어.이기심으로 똘똘뭉친 어리석은 탐욕 말이야. 얼굴을 찌푸리다 외삼촌이 소개해주신 분들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줄수는 없겠지 싶어 입꼬리를 올리고 단독 2층주택집 앞에서서 초인종을 눌렀어. 띵동-하고 울리는 소리가 너무 예뻐서 그만 몇 번이나 눌러버렸지 뭐야, 어린애처럼. 그러다 문을 벌컥 열고 하얀 런닝티셔츠를 가슴까지 올리고서 배를 벅벅 긁으며 부스스한 머리를 흐트리고 서 있는 남자가 보여.반쯤 감은 눈으로 뭐야, 너 누구야 라며 웅얼거리는 말에 김종현인데- 라고 말했어. 그러자 뭐, 김종현이 누군데. 반쯤 감긴 눈을 번쩍 뜨면서 물었어. 난 그냥 김종현인데 김종현이 누구냐는 말에 되려 내가 당황을 하다 김종현이라고 똑바로 말했어. 혹시라도 내 발음이 이상해서 못 알아듣는건 아닐까 걱정했지.그런데 남자는 무슨 미친놈이 아침부터 지랄이야- 라며 문을 다시 쾅 닫어 버린거 있지. 쾅 닫힌 문 앞에서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뒤 제 눈처럼 동그랗게 튀어나온 손잡이를 보고 손을 올려 돌리니까 그냥 열려버렸어. 허락없이 들어가도 되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국의 더위는 미국의 더위와정말 비교도 안될 정도로 너무도 더워서 당장이라도 발벗고 쓰러질 것 같아서 말이야. 조심스럽게 발을 딛고 들어가자 거실에서 여전히 배를 벅벅 긁으며 냉장고문을 열어 물병째로 그냥 물을 들이키는 남자가 보여. 그리고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다가 나를보고는 허 - 하는 콧방귀소리와 함께 먹고 있던 물을 싱크대애 분출한 뒤 들고 있던 물병을 식탁에 올려두고서 성큼성큼 화난 듯 다가와. 허락없이 들어온 것에 화가 난 것일까? 남자가 다가와 손을 위로 올리자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며 두눈을 질끈 감는데 아무런 고통이 찾아오지 않아서 눈을 뜨고 남자를 올려다봤어. 나보다 큰 남자의 키에 고개가 뻐근해질 정도로 얼굴을 치켜들었지. 사실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높이 치켜든것은 습관이였어. "사내새끼가 손한번 들었다고 쫄구있어.남의집에 문열고 들어오는 미친놈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워서 그러는데 혹시 네가 그 우리엄마랑 친구인 김주석 할아버지 조카냐? 오늘 온다고 하길래 혹시 너인가 하고." "맞아요. 우리 외삼촌이 맞을거에요." "야. 난 우리엄마 친구 김주석할아버지 조카를 알고 있는것이지,김종현을 알고 있지는 않거든? 네 외삼촌이 보낸 사진속 사람이랑 너 너무 다르게 생겼어. 생긴거 말고 분위기가 말이야." "....." 당연하지.외삼촌이 보낸 사진은 7년 전 내가 웃음을 잃기전 모습이였을테니까.이 남자도 이렇게 못알보는데 과연 그 아이는 나를 보고 알아나 봐줄까 하고 걱정이 들어 한숨을 푸욱 내쉬자 조그만 녀석이 무슨 한숨이냐며 남자는 내 팔을 잡고서 2층 계단을 밟고 올라갔어. 올라가던 중 한손안에 잡힌 내 팔을 보고서 뭐라고 중얼거리던 남자가 깔끔하게 하늘색으로 도배되어있고 파란색의 시트 싱글침대와 체리색장농, 스탠드가 올려져있는 흰색 책상과 의자가 놓여진 방안으로 나를 집어 넣으면 네 방이야- 하고 침대에 풀석 앉자 그자리가 꾸욱 내려앉아버려. 그런데 이공간은 나와 너무도 달라서 이질적인 기분이 들었어. 하늘색 벽들은 너무 어두운 나와는 달리 너무 밝아서 내가 이공간에 있으면 때라도 뭍을 것 같았고 마치 이공간에 있는 모든 사물들이 금방이라도 팔과 다리를 달고 나에게 뛰어와 쫒겨낼 것 같은 불안감도 물씬 들어와 눈을 가늘게 떠 방안 곳곳을 살펴 보았어. 꼭 완벽하게 인테리어된 방안에 벼룩시장에서 싸게 구입한 골동품 하나 덩그런히 놓여것처럼 나 자신이 볼품없어보여. 입술을 삐죽이며 방안을 살피는데 남자가 침대에 앉은 엉덩이를 벌떡 일으키더니 나를 잡아 끌어당겨 침대에 푹 앉힌뒤 빤히 바라보며 실없이 웃어. 실실 웃던 남자는 제배를 누르며 간신히 웃음을 참아내고 얇은 입술을 열었지. "너 지금 무슨 눈으로 있었는지 알아? 완전 수사반장처럼 살펴보는게 진짜 웃겼어. 키도 땅만한 게 몇 살이나 먹었냐?" "스물두 살이요." "생각보다 나이가 있네. 난 또 고딩인지 알았지. 성장 부족인가? 그건 그렇고 언제까지 여기 있을 예정인데? 난 우리집에 누군가 있다는 것이 불쾌해서 말이야." "죄송해요. 꽤 길 것 같아요." "죄송하다면 다행이고." 장난스런 남자의 말에도 종현은 아무런 반응없이 묵묵히 입을 다물고 눈을 아래로 내리깔아 긴 속눈썹이 살랄살랑 바람에 춤을 추듯 두 눈만 꿈뻑이고 있었다.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아래로 내리깔아져 음영이 드리워진 것을 보고 순간 예쁘다 라는 생각을 한 남자였다. 뭐랄까…. 종현에게 함부러 다가 갈수 없는, 감히 침범할 수 없는 무언의 벽 때문에 남자는 좀 더 물어보려는 말을 삼키며 침대에 일어나 좀 쉬어- 나즈막하게 말한 뒤 문을 닫고 나갔다.종현은 무언의 단절, 흔들리는 소외감이 느껴지고 난간에 부딪치듯 뒤로 물려난 기분이였다. 땅에 닫지 않은 다리를 모아 팔로 끌어안고서 고개를 푹 숙이고 주머니에서 사진 한장을 꺼내 종현은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듯한 희미한 미소는 사진속 주인공에 머물러 있었다.사진속 주인공을 뚫어져라 보던 종현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것은 한순간의 행동이였다. 당장이라도 그 아이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떨려서 참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난 택시를 잡고서 외삼촌이 미리 알아봐둔 그 아이가 다니고 있는 대학교로 향했어. 한국에 와서 적응좀하고 이쁜 모습으로 만나고 싶었는데 앞서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나봐. 아까와는 다르게 좀 더 작은 요금을 내고 택시에 내린 뒤 커다란 학교 앞에서 한참이나 망설이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버린 손을 바지에 쓰윽 닦고서 한걸음 한걸음 작은 보폭으로 앞으로 향하고 있는데 캔버스를 매고 다니거나 남녀 둘이 손을잡고 벤친에 앉는 사람들. 자판기 앞에서 선배를 조르며 음료수 좀 뽑아달라고 칭얼거리는 여대생을 보며 잠깐 넋을 놓고 보다가 지나가는 한 학생을 잡았어. 놀란듯 삼각 플라스크에 들어있는 병을 놓치자 아악- 이라는 비명소리와 함께 자리에 주저앉아 빨갛고 물컹거리는 고체의 덩어리를 왼손에 쥐어들며 조금 화난듯 나를 내려다봐. 어떡하지. 일단 사과를 해야할 것 같은데 입이 굳어서 아무말도 못하겠어. 사과는 어떻게 해야지 진심으로 받아줄까? 사람은 잘못한 일에 인정할 줄 알아야하며 그 잘못에 사죄해야 한다는 것. 외삼촌의 말씀이 머리에서 붕붕 떠다니는데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 바닥에 쭈구려앉아 고체 덩어리를 들고 있던 남자는 고체 덩어리를 바닥으로 던지더니 별안간 벌떡 일어나 긴 몸을 나에게 들이밀었어. 남자의 짙은 눈썹과 날카롭게 찢어진 눈매 때문에 목에 고이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어. "너 때문에 내 연구자료가 망가졌어. 개구리 생체실험 준비물중 개구리의 가장 중요한 심장을 네가 망가뜨려 놨어, 어쩔거야." "미안해요. 내가 찾는 사람이 좀 있어서 물어보려다가.. 최민호 알아요?" "그 새끼는 왜 나한테 와서 찾는데! 잔말 말고 나랑 개구리 잡으로가, 네가 책임져야지. 오늘까지 못 잡으면 네가 교수님 앞에서 무릎꿇고 빌어.운수도 지지리없지. 오늘 운명의 상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고작 이런 놈이랑 만나는걸 운명이라고 하는거야 뭐야." 남자는 내 손목을 잡아끌고는 학교를 빙 돌아서 녹슬고 이끼가 끼어있는 건물로 들어가 오염된 작은 연못 앞으로 가더니 심혈을 귀울이며 등을 낮추었어. 그리고 강아지 걸음 걷듯 천천히 움직이며 연못을 지켜보다 멀뚱이 서 있는 나를 잡아끌어 땅에 주저앉혀 저 앞에 청록색으로 내 손바닥만한 개구리를 보여주며 잡으라고 언성을 높여. 그러나 난 개구리를 한번도 잡아본적이 없어서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있는데 별안간 등을 떠밀며 네가 망가뜨려놨으니 잡으라고 화를 내는 통에 할 수 없이 연못에 다가 가서 손을 담그고 개구리를 잡으려 손을 뻗는데 돌맹이에 무릎이 걸려 연못으로 몸이 푸욱 들어가 지독한 꼬릿내가 코를 찔렀어. 온몸이 연못물로 젖어져 몸이 축 늘어졌지. 남자는 내가 개구리를 놓치고 연못으로 빠져 버리자 한숨을 푹 내쉬고 내 손목을 잡아끌어 나오게 한뒤에 어디론가 데려갔어. 가만히 보니까 다시 학교건물로 돌아서 가는 것 같았어. 걸으면서 최민호는 어디에 있어요? 라고 물으니 조용히 입 좀 다물고 따라오라는 말만 할뿐 입술을 질끈 물고 빠르게 한교실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어. 마침 수업중이였는지 연필을 끄적이던 학생들이 갑자기 들이닥친 이곳을 쳐다보자 괜히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게 물들여진 것 같아. 썩은 연못에 빠져서 그런지 구린내와 칙칙한 냄새가 코를 찔렀는데 나만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두들 코를 막고 얼굴을 찌푸리는 것을 보다 남자가 내 손목을 끌어다 안경을쓰고 흰 수염을 기른 인자한 늙은 교수앞에 나를 데리고 오더니 그대로 내 정강이를 차서 무릎을 꿇게 한 뒤 억울하다는 얼굴로 말했어. "교수님. 제가 밤낮을 그 썩은내나는 연못 앞에서 겨우 잡은 개구리를 이놈이 망가뜨려 놨어요. 제 잘못이 아니라고요." "이번엔 또 얼마나 받아먹여서 시키는 짓이야. 새파랗게 어린애를 데리고, 하여튼 네 녀석하는 꼴이 그렇지 뭐. 술 퍼먹다가 놓친게 아니고? 너 유명하잖아. MT때도 술병 돌리고 지쳐 쓰러져도 끝까지 술병 잡고 잠드는거 말이야. 개구리 잡아놨다가 술생각나서 버리고 온 거 아니야." "아악!! 교수님 정말. 몇 년 동안 밑에서 배운 부 조교수인 저보다 처음 본 이녀석을 믿는다는 겁니까?! 제가 아무리 술 애주자라지만 이번 과제는 교수님과 함께 해부할 수 있는 특혜과제였잖아요. 다른건 몰라도 제가 이일에 얼마나 충신을 하고 있는지 알면서 그러신다. 가만히 있지 말고 너도 좀 말해. 이 모든 일은 다 너 때문이잖아!" "죄송합니다." 난 당장 무슨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먹살을 잡고 흔들 남자의 눈빛에 기가 죽은 얼굴로 죄송합니다 하고 늙은 교수님 에게 사과를했어. 외삼촌이 그러는데 무슨 일에 잘못을 저질렀을때는 무조건 사과를 하라고 했거든. 어릴적 할아버지의 낡은시계 그림책에서 나오는 할아버지랑 똑닮은 늙은 교수님이 갑자기 너털웃음을 짓고 있는데 그제서야 내가 이곳에 온 본 이유를 잊고 있었던 사실을 깨닳았어. 지금 이렇게 죽치고않아 허망하게 시간을 흘러보낼 수 없어서 꿇었던 무릎을 펴 일어나 들어온 문 입구로 나가려는데 어딜 가는 거냐며 어깨를 잡아 돌려세우는 남자에게 최민호 찾으려고요- 라고 낮게 중얼거리자 아까부터 그새끼는 왜 찾는냐며 귀찮은 듯 제 뒷머리를 긁더니 우선 네 꼴 좀 어떻게 해봐라는 말에 두 눈으로 내 발부터 쓰윽 상체까지 올려다보다가 난감한 생각이 들었어. 오랜 만에 보이는 얼굴인데 이런꼴로 만나는건 너무 창피하잖아. 어쩌지 하고 눈을 굴리고 있는데 남자가 따라와- 하는 약간 화난듯한 하이 톤의 목소리에 조용히 뒤를 따라가는데 보폭이 빨라서 숨이 차올라 사이사이에 두 무릎에 손을 올리고 호흡을 뱉어내며 도착한 곳은 이상한 실험실이였어. 유리병 안에 개구리라던지 쥐, 토끼들이 죽은 채 담겨있는 것을 보고 흐잇- 뒤로 몸을 빼다 남자의 가슴에 부딪친 머리를 흔들며 미안해요 라고 사과를 했지. "넌 미안해요 아니면 최민호 어디있어요 이 말밖에 할줄 몰라? 우선 이걸로 머리 닦고 이건 실험할 때 입는 흰 가운인데 이거라도 입어. 그리고 그 잘난 최민호 만나러 가던지 집으로 가던지 알아서 해. 그 옷 비싼 거니까 집으로 가면 다시 다음날 가져와야 돼. 알아들었냐?" "네. 그런데 토끼랑 개구리는 왜 잡아서 병에 집어넣는거예요? 이 이상한 의료도구들은 또 뭐지…." 종현이 똘망한 눈동자를 더 크게 떠 주위를 둘러보자 남자가 이마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토해냈다. "너 이학교 건물 이름은 보고 들어온거 맞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과를 희망한 학생들이 공부하는 건물이야 여기. 그 동물들은 그냥 막 새내기로 들어온 학생들이나 피만 봐도 구토하는 학생들한테 실험용으로 쓰이는거지. 실제로 견습은 사람의 시체를 가지고 해부연습을 해. 아까 그 교수님이 해부학과 교수야. 나도 해부학과 학생이고 네가 이름이 닳도록 말하는 최민호도 해부학과 학생이지. 지금은 아마 시체해부하러 갔을거야. 새파란 새내기들 데리고 말이야. 그새끼 실력하나는 끝내주거든." "시체 해부라면 부검 그런 것도 하는거에요?" "야, 그거 말도 마. 안그래도 법정이랑 사회에서 다들 난리야. 갓 대학생들이 무슨 부검을 하냐고 말이야. 우리는 부검이기 보다는 국과수에 시체를 운반하기 전 국과수가 조사할 필요는 없는 시체들로 해부를 하는거지. 가끔 국과수의 일도 도와주고는 있지만 말이야. 연세대 해부학교실은 미스테리 사건들의 재부검을 전담하며,독립된 수사권한을 가지거든.그런데 난 부검 같은거 솔직히 싫어. 사람장기 들여내고 사진기 들고 찰칵찰칵 찍어대기나 하고 가끔 봉합도 안 하는 경우도 있다고. 그런데 해부는 다른 거야. 단어의 어감치고는 별로지만 부검은 죽은 사람의 이유를 찾아 사회나 메스컴에 올리는 거지만 해부는 시체와의 단둘이 하는 약속이거든. 아무도 모르게 말이야. 해부를 해서 장기를 확인하고 병의 원인을 알아내면서 미래에 발전하는 의료시스템에 힘을 가하는 일을 하는게 우리들일이야. 그런데…너 몇 살인데 존댓말이야?" 남자는 이제껏 저혼자 중얼중얼 주저리를 늘어뜨리다가 아까부터 존댓말을 꼬박꼬박쓰는 종현을 향해 물었다. "스물두 살이요." "뭐야. 그 얼굴을 하고서 스물두살이면 동안들 다 얼어죽어야겠네. 나도 스물두 살. 어디학교 다니냐?" "아니요, 아직 안다녀요. 그런데 곧 여기 입학하려고요. 해부학과에 말이 이에요." "네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말이야. 그리고 너 이쪽 일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 보이는데?" "…사정이 있어서요." "그건 그렇고 동갑이니까 말놔. 그렇게 하면 내가 더 늙어보이잖아." "버릇이 되어서 그래요. 저이만 가볼게요. 좀전에 남자가 건네준 흰 가운을 입은 종현이 간다며 등을 돌리자 남자가 가려던 종현의 어깨를 또다시 한번 잡아 돌려세우더니 억지로 종현의 오른손에 제왼손을 끼여넣으며 세게 위아래로 흔들고는 손을 놓고서 얄팍한 제 입꼬리를 위로 올리며 말했다. "김기범이다. 해부학과 최고의 유망주 김기범 기억해 두라고." "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방긋 웃으며 허리를 숙이자 기범은 머리에 거대한 해머를 얻어맞은 듯 멍해 있었다. 웃는 모습이 참 예쁘다고 생각한기범은 저 스스로가 한심스러워져 피식 웃으며 마른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김기범 네가 여자를 못보지가 오래 됬나보구나. 하다못해 새까만 남자새끼가 예뻐보이고 말이야. 종현은 기범에게 전해들은 교실을 찾아 사방팔방 뛰어다니다 G-해부학교실을 발견하자 금새 웃음을 지으며 미닫이 문을 열어 젖끼고 안으로 망설임없이 들어섰다. 그러자 한순간에 고요하고 음습한 기운이 종현의 온몸을 싸고돌았다. 시체를 해부하고 있었던지 네 명의 학생이 파란색 마스크와 파란가운을 입고서 양쪽으로 두 명씩 서 있었고 마스크를 턱 밑까지 내리고 하얀색 가운을 입은 남자가 갑자기 들어온 종현을 보고 눈을 찌푸렸다. 메스를 쥐고 있던 손이 종현을 가리키더니 당장 문 안 닫아! 라고 고함을 지르자 놀라 딸꾹질을 하며 문을 닫고 들어온 종현이 그 손을 내려 메스를 쥐고서 다시 시신의 배 한가운데를 가르기 시작하는 남자의 얼굴을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그리고 이내 두눈이 커져버렸고 그 눈 안에는 금방 물기가 멤돌았다. 그 아이를 찾았어. 오랜 만에 본 민호의 얼굴은 과거에 내가 생각한 얼굴보다 살이 빠져서 볼이 좀 움푹 들어가 있었지만 여전히 잘생긴 얼굴 그대로였지. 짙은 눈썹과 동그랗고 커다란 사슴같은 눈동자와 오똑한 콧선. 그리고 나를 불러주던 그 입술이 여전해. 그때도 나보다 항상 한뼘씩 컸었는데 이제는 머리하나는 더 있는 것 같아. 실감이 나지 않아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어 볼을 꼬집자 새의 부리에 물린 듯 찌릿한 고통이 찾아와 난 웃어버렸어. 메스를 쥐고 있는 민호가 너무도 멋있어 보였거든. 당장이라도 민호의 허리에 두 팔을 두르고 그 커다란 등에 머리를 기대고 싶은데 너무더 집중하고 있으니까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 지금 민호는 나를 몰라보는게 아니라 단지 일에 집중을 해서 그런거야. 난 그렇게 생각해. 우리 민호가 나를 잊을 리는 없잖아. 사실 민호가 해부학과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은 몇 년 전 외삼촌에게 들었어. 그뒤로 난 집에서 독학을 하면서 피나는 노력을 했어. 민호가 좋아하는 일에 똑같이 관심사를 둔다는 것은 함께한다는 거잖아. "손바닥 인장측과 손등인 배측부분이 못으로 관통하여 출혈을 심하게 일으켰어. 그리고 시신의 얼굴을 잘 보면 입안의 외측뼈 즉 뺨을 이루는 부위인 협부의 방향에서 귀의 앞방향에 이르는 부위인 이하선교부에 심하게 그은 자국이 있는데 깊이로 보나 길이로 보나 잭나이프 일꺼야. 장측과 배측 사이로 관통한 못이나 이한선교부에 심하게 그은 자국으로 사람이 죽을수는 없지. 뒷통수부분에 좀 움푹 나온 부분이 있을꺼야. 아마 그곳이 후 두골이 있는 부위인 후두부인데 그 안에 심한 내출혈이 일어났어. 피는 밖으로 흐리지 않았고 후두부안쪽으로 계속 고이다보니까 내출혈로 사망한거야. 머리를 내리친 흉기는 작게 올라온 혹을 보니까 날카롭지 않고 둥글고 작은 그래…. 골프 드라이버이겠군. 아, 그리고 배를 가르니까 반지하나가 나오더군. 그러면 답나온거 아닌가? 몇 년을 사귀어오다가 여자가 어느 날 결혼반지를 끼고 나타나서 결혼할 남자가 생겼다고 헤어지자는 말에 평소 집착이 강했던 남자친구가 충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벌인 사건. 정말 바보같지 않아? 사랑에 그렇게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들 말이야. 너희들도 한참 미팅이나하고 소개팅할 시간에 해부학 용어나 더 배워둬. 괜히 남자 잘못 건드려서 이 여자 꼴 나지 말고. 나중에 너희들 시신 해부하라고 하면 난 돈줘도 안 할테니까." 평소 말이 없고 과묵한 민호이지만 해부실에서는 언제난 따발총처럼 말이 많아지는 것을 잘알기에 새내기들은 네에-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 뒤 재빠르게 시신에게 엉겨붙어 봉합을 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뿌듯하게 내려다 보던 민호는 턱까지 내린 흰 마스크를 벗어 은색실험판에 올리고 손에 낀 장갑까지 벗고서야 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종현을 향해 눈을 돌렸다. 그 눈에는 한치흐트럼없이 고요하였기 때문에 약간 불안을 느낀 종현이 민호에게 다가갔지만 민호는 그런 종현을 지나쳐 손을 씻고 미닫이문을 열고 교실을 나갔다. 놓칠세라 빠르게 민호를 뒤쫓아 뛰던 종현이 별안간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버리는 민호의 행동에 어렵사리 신발 앞꿈치로 걸음을 멈춘 뒤 민호를 올려다봤다. 여전히 그 눈동자는 고요하기만 하다. 잔잔한 호수같아서 금방이라도 그 호수 안에 돌이라도 던지며 이공간이 깨져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종현은 돌을 던졌다. 그것고 가장 크고 묵직한 돌을 들고 저 멀리. "민호야, 나 종현이야." "……." "종현이라니까? 나, 기억해?" "할말은 그게 다 인건가? 처음 보는 얼굴인데 신입생이면 신입생답게 굴어. 괜히 관심 끌려고 아는 척하지 말고." "뭐야…. 그런 장난 재미없어." "지금 내가 장난치는 것으로 보인다면 그게 더 웃기군.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장난을 왜쳐." 세상이 흔들리고 무너진다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종현은 무너진 제 가슴을 끌어안고 고개를 숙였다. 감히 행복한 재회를 꿈꾼 것은 아니지만 제 얼굴조차 기억을 못하는 민호가 원망스러운 종현이었다. 그래도 다시 한번 그리운 그 얼굴을 바라보기 위해서 고개를 치켜든 종현은 뒷걸음을 쳤다. 민호가 매섭게 눈을 떠 종현을 밀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사람을 한순간에 쥐고 흔들어 놓는거." 빠르게 스쳐 지나가듯 뱉어낸 말에 종현은 제 귀를 의심했다. 분명 알아봤다. 자신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모른 척하고 있다. 그 모든 수식어들이 가슴을 설레이게 하면서 아프게 한다. 바보처럼 민호가 뒤를 돌아 사라졌는데도 그 자리에서서 움직이지 못했어. 차오르는 눈물이 금방이라도 터져버려서 나 조차 제어할 수 없을까봐서 움직일 수 없는 거야. 내가 이 자리에서 움직이면 민호를 또다시 버리는 것이 되어버리잖아. 이번에는 민호가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을꺼야. 또한번 상처 주는 건 너무도 잔인한 일이니까. 04 < 첫번째 타락: 웃으며 의문사를 당한 남자 > "해부 시작하고 5분도 못 버텼네." "해부 할 때마다 그러자 나. 그런데 보통 익숙해지지 않아?" "그러게. 혼자 제일 멀쩡한 척 굴면서 말이야." "둘이 그렇게 잡담할 시간 있으면 네 친구 구토물이나 처리하지 그래? 사람 장기 다 들어 내는 거 참지도 못할 거면 들어오지 말라고 해. 너희도 관심 없으면 언제든지 나가도 좋고." 해부실에서 5분을 못 버티고 세미나 학생으로 들어온 학생 한명이 구토를 하며 기절하고 들것에 실려가자 오늘따라 신경이 곤두서 있는 민호가 역한 구토 냄새에 얼굴을 찌푸리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집어삼키며 제 이마를 쓸어넘겼다. 몇 년 만에 본 종현의 얼굴이 사실 미치도록 그리웠다. 똘망똘망한 눈이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데, 그대로 손을 뻗을 뻔한 것을 깊게 숨을 들어마시며 주먹을 꽉 쥐고 막지 않았더라면 김종현을 향한 분노와 실망감을 단 한순간에 용서해버릴 뻔했다. 김종현 때문에 법의학에 매달렸을 적에 의욕은 앞섰지만 당장 내 눈앞에는 김종현이 없으니까, 모든 일에 다 포기하고 싶었고 할 마음이 사라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몇 년 전 김종현이 겪은 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그래, 나에게는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내 스스로 김종현의 누명을 벗겨내리라 마음먹었는데 몇 년 뒤 그 사건은 묻혀져버린 염량세태가 되어버렸고 허물없는 뱀이 된 듯 몸 한쪽이 떨어져 나간 기분이었다. 마치 엄청난 대결에 밀려나 출발선에서 발을 떼지 못해 아둥바둥거리는 제 모습이 저주스럽게도 싫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못한 상태에서 김종현이 돌아왔다. 갑갑한 마음에 휴- 한숨을 내쉬며 세미나 학생들에게 아까처럼 또다시 봉합을 맡기고 교실을 나온 민호다. 민호의 굳은 얼굴이 조금씩 풀려가고 있을때 보이스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틀림없는 여자의 목소리다. "저기… 민호 선배. 교수님이 잠깐 들어오시래요. 이번에 의문사로 죽은 40대 후반 남성 해부 부탁하시려나 봐요." 흰 가운을 입고 빨갛고 두꺼운 뿔테안경을 얼굴에 반을 가린 채 서있는 여성은 과 내에 서도 엄청난 미인으로 속한다. 그야말로 인간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치명적인 그녀의 외모는 큰 고동색 눈동자와 앙증맞게 솓은코. 그리고 붉디붉은 두꺼운 입술. 고작 작은 안경에 얼굴이 반이 가릴 정도로 작은 얼굴로 엄청난 분위기를 흘리며 지나갈때면 때묻지 않은 순수한 뭍 남정네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고 만다. 법의학부 부교수답지 않게 브라우스 단추가 서너개 풀어져 풍만한 가슴이 보일 듯 말 듯하고 가늘고 긴 팔과 얇고 긴 다리는 그녀를 더 돋보이게 하였다. 도도한 만큼 성격도 워낙 앙칼지고 두뇌가 우수해서 차기 교수자리까지 꾀차고 있는 그녀에게 단 한가지 아킬레스건이 있다면 그건 의미없이 허공에 눈을 짚으며 서있는 최민호라는 사람이다. 갖으려고 안달을 해도 갖을 수 없는 사람. 지독하게도 화나게 하는 그 사람. 그녀는 붉은 제 입술을 하얗고 고른 치아로 질끈 물어당겨 가슴 안에 들고 있는 파일을 힐끗 바라보더니 발길을 옮겼다. 역시 아무런 감흥없이 연구실 앞에서 문을 두드리고 들어간 민호가 머그컵잡에 입을 박고 있는 교수 앞으로 다가가 바퀴 달린 의자를 손으로 끌어와 앉았다. 뜨거운지 혀를 낼름거리며 다 늙은 나이에 호들갑을 떨던 교수는 입가에 뭍은 작은 커피 크림 잔해물을 소매로 닦아내고 쓰고 있던 난시의 안경을 벗어 탁자에 올린뒤 팔짱을 끼고서 서민호를 조용히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건방진 최민호라는 인간은 교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제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교수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팔짱을 풀고 나근나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48세 구 지성. 직업은 자동차 정비소에서 오전 근무를 하고 철야에는 가끔 막노동도 하고 있음. 부인하고는 3년 전 결별을 하고 원룸에 그럭저럭 입에 풀칠을하고 있으며 어제 저녁 6시 사체로 발견." "…해부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럼 내가 너를 부른 이유가 없지. 김기범이랑 이번에 들어온 세미나 학생들 데리고 진행해." "언제까지 경찰을 도우며 사실 생각입니까. 전 사정이 그렇다 치고 교수님이 이러실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경찰한테 사례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위해하십니까. 이 일…. " "네가 말한 사정처럼 나도 사정이 있어서 그래. 그래줄꺼지?" "교수님이 언제부터 부탁이란 것을 하셨습니까? 명령이 라면 모를까. 그럼 바로 시행 하겠습니다." "녀석. 차갑게 굴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넌 너무 멋있어서 탈이야." 교수의 장난스러운 말에도 아무런 대구 없이 탁- 바퀴가 달린 동그란 의자가 바닥 위에 조금 밀려나가면서 멀어지고 자리에 일어난 민호는 허리를 꾸벅 숙이고 연구실을 나왔다. 발을 빠르게 옴겨 해부실에 도착하자 언제부터 말을 전해들은 것인지 두 명의 세미나 학생들과 김기범이 마스크와 가운을 입은 채 시신 앞에서 서 있었다. 다행히 구토를 하던 그 세미나 학생이 보이지 않자 민호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손을 씻고 위생용 장갑을 끼고서 마스크를 올리고 이미 입고 있는 가운을 털어내 자리에 섰다. 잘 부탁 드립니다 - 소리가 들리고 민호의 손에 조용히 메스가 쥐어졌다. 그러자 세미나 학생이 한명화이트보드 앞으로 다가가더니 보드 마카를 쥔다. "맨 처음 경부(목부분)에서 치골의 윗부분까지 절개를 하지. 피하 지방 2cm." 보드 마카를 쥐고 있던 학생의 손이 빠르게 화이트보드에 써내려갔다. 하나라도 빠트릴 시에는 그후한의 두려움을 잘 알기에 손에 쥔 보드 마카가 땀에 젖어 미끌거린다. "쇄골이 부러졌어. 김기범 네가 사진 좀 찍어서 확인 좀 해봐." "야, 나 이래봬도 해부학 유망주거든, 사진하나 찍으라고?" "닥치고 하기나 해. 시신 앞에서 입 벌리는 거 질색이니까." "하여튼 잘난 최민호 누가 말려." 민호의 말에 투덜투덜거리면서도 기범은 해부실 한켠에 놓여져 있는 카메라를 들어 줄을 목에 걸고서 시신의 앞으로가 쇄골부분 앞으로 들이댄 후 플래시를 몇 번 눌렀다. 찍힌 사진을 흐믓하게 바라보던 기범의 몸을 메스 뒷부분으로 콕 찔러 밀어내 그 자리에 선 민호가 횡경막의 높이를 확인하기 위해 늑골밑으로 손을 넣었다. "좌제 4늑간(늑골사이),우제4는 골." 민호의 말에 조용히 화이트보드에 적어내리던 세미나 학생이 별안간 보드 마카를 땅에 떨어트리며 놀란듯 두 눈을 크게 떴다. 기범이 민호의 머리를 까치발을 들어 후려친 뒤 욕을 뱉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해부학 학생들 사이에서 민호는 지킬앤하이드로 통할 만큼 싸이코일꺼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방금 기범의 행동은 쇼킹한 일임이 틀림없다. 역시 그 안에 있던 또 다른 세미나 학생도 놀란듯 눈을 크게 뜨고 기범을 바라봤지만 기범은 어깨를 들썩이며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더 놀라운건 최민호가 그저 묵묵히 맞아주고 있다는 점이다. 벙쩌있는 아이들에게 민호는 정신차려- 라며 중 저음으로 말을 뱉으며 늑골을 절단해서 전체를 적출했다. 모든 해부를 끝낸 뒤 민호가 먼저 해부교실로 들어가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뒷목을 의자에 받치고 눈을 감았다. 역시 사람의 배를 갈라내고 장기를 들어내어 확인하는 것과 어긋난 뼈들이 부셔저 내려앉는 것을 보는 건 몇 년이 지나도 익숙치 않다. 가슴 한가운데에 무언가 꽉꽉 막혀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들고 화가 난다. 나란 사람이 겨우 이정도에서 무너져 앉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아직 나에게 주어진 할일을 끝내지 못했다. 지독한 인연의 끊인 김종현이 얽히고 얽힌 실타래가 풀어질때까지 쉬지 않고 달려야 한다. "전두골이 함몰 골절. 전두골에 받은 충격은 대략 10cm 높이에서 30kg 정도의 낙하물에 맞은 것으로 보임. 사인은 그 충격에 의해 일어난 경추골에 의한 골수손상.이라는데? 30kg 정도의 낙하물이라…. " 민호가 피곤함에 누적된 몸을 의자에 맞기고 눈을 감고 있을 때 별안간 웅성거리는 두 사람의 목소리와 함께 방정맞게 교실문이 열렸다. 기범은 교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민호 앞으로 다가가서 피해자의 사인을 줄줄이 말했다. 그에 민호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고 기범만 홀로 심각하게 볼펜에 입을 물고 끄응- 거리며 제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제자리로 가 의자를 빼고 털석 무거워진 엉덩이를 내려놓고 또 잘근잘근 모나미펜을 씹어버린다. 무언가 생각이나지 않고 고민이 많을 때 하는 기범의 버릇이였다. 그런 기범의 입에서 억지로 모나미 펜을 뺏은 남자가 자신의 자리로 가 서랍을 열더니 소세지하나를 꺼내어 손수 벗겨서 기범의 입에 물려주고 의자를 끌고와 기범의 옆에 털석 앉았다. 펜을 꺼내가자 뭐야 …. 투정부리려던 기범은 입안에 들어오는 고소한 담백질에 금새 기분이 좋아져 소세지를 과장스런 소리를내면서 먹었다. 그 모습을 흐믓하게 바라보던 남자는 민호를 쳐다보았다. 기범의 말에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선배는 10cm 높이에서 30kg 정도의 낙하물이 무엇일거라고 생각해요?" "30kg 정도의 낙하물로 생각할 수 있는건 얇은 액정 티비 46인치가 대략 30kg, 정자동 세탁기도 그 정도야. 그외에 애기들용 침대, 고급 안락의자…. " 라고 민호가 중얼거리자 기범도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듯이 제 손뼉을 치고 입안에 모인 소세지 잔해를 삼키며 자신있게 말했다. "아, 그리고!! 12조의 페르시아 융단. 그렇지?" "선배. 융단으로는 죽지 않을꺼라고 생각하는데요." "방철용, 그냥 넌 입 다물고 있어라.30kg 정도의 물건에 답했을 뿐이야. 아니, 그러면 네 머리 무게로 치자면 살인무기가 될 수 있겠는데? 솔직히 불어. 너가 죽였지." "장난 그만 쳐요, 선배. 그런데 왜 이마 부분이 골절이예요, 보통 위에서 물건이 떨어지면 두 정부 (머리꼭대기부분)잖아요." 장난 좀 그만치라며 기범의 들이대는 머리를 밀어낸 철용이 민호를 향해 묻자 위를 올려다봤으니까…. 하고 간단명료한 말에 아, 확실히 그렇군요- 하고 중얼거리자 그 모습을 보던 기범은 다 먹은 소시지에 아쉬움을 토해내며 생각하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인데 멍청하긴- 하고 쯧 혀를 차며 노트북을 열었다. 노트북을 열고 무언가 찾던 기범에게 그럼 어째서 위를 올려다 본 거죠? 하고 질문을 하는 철용의 물음에 몰라- 하고 네이버 검색창에 제가 좋아하는 여배우들만 검색하고 있다. 역시 오늘도 사건관련 회의는 여기서 끝인가? 하는데 무심히 있던 민호가 너는 언제 위를 봐? 하고 물어보는 말에 철용이 생각없이 석양이라던가 별을 볼 때요하자 옆에서 기범이 히죽히죽 웃으며 의외로 로맨틱하다- 라며 웃어댔다. 그런데 보통사람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올려다보지 않지 않아요? 그 말에 기범과 민호는 꾸욱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이였기 때문에 무어라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꾀나 길어질것 같군." 민호의 말에 모두들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아무래도 오늘은 집에가기 글렀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05 "응, 외삼촌. 짐은 다 왔고, 그럼 잘 지내고 있지. 고작 하루 지냈는데 벌써 기분이 좋아서 말이야. 아! 그리고 민호가 나를 알아봐 주면서 반갑다고 했다니까. 거짓말을 무슨…. 진짜야. 나 없다고 밥 안 챙겨 먹지 말고 어디 아프면 양 박사님께 전화하고 응, 그래 끊어." "거짓말이 주특기인가 봐? 얼굴은 하루 사이에 피골이 상접하고 꼬락서니는 어디서 빠진 쥐새끼 같은데 말이야." "미안한데 좀 나가줄래요? 나 혼자 있고 싶어요."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민호는 나를 잊지 않았지만 잊으려고 하고 있었지. 나 때문에 큰 상처를 받았을 민호의 과거 시절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면서 파노라마 같이 스쳐 지나가는데 그 과거를 지켜보지 않았지만 알 것 같았어. 냉소적이고 평소에 무슨 일에 적극적이지 않지만, 가끔 승부욕 때문에 목표한 일에는 끊임없이 박차를 가하고 자존심도 많으며 절대 누구에게 부탁이라고는 해보지 않은 민호야. 그런 민호가 그 자리까지 해부학 차기 교수자리까지 올라올 때까지 실력으로만 올라왔을 리는 없잖아. 높은 사람들 밑에서 기고 무릎을 꿇고 최민호답지 않은 행동을 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밑도끝도없이 미안해져오는거야.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내 자신이 허물껍데기처럼 가치가 없어진 것 같아. 그나마 민호에게는 필요한 사람이 되자고 했는데. 종현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내면에 패류처럼 자기 처소를 마련하고는 철저하게 아무도 들이려고 하지 않는 자아 방패막이를 가지고 있었다. 질식할 정도로 쌓아놓은 마음의 벽을 남자는 느낄수 있었다.그래서인지 몰라도 더욱 신경이 쓰이고 관섭하고 싶다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생겼다. "내 이름 안 궁금해?" "이태민이잖아요." "어, 어?! 너 내 이름 어떻게 알아. 언제 내 호구조사했어?" "아주머니께서 말해주셨어요. 나이하고 이름." "……." 보통의 사람이라면 따지기 마련이었다. 분명히 태민이 자신의 나이를 속이고 툭툭 건드리는듯한 비아냥거리는 말투를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태민의 앞에서 별거 아니라는 듯 무심한 눈을 굴리며 밥 먹으라면서요- 하고 방을 나가는 종현이다. 멍하게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태민은 헛웃음을 뱉어내고 노랗게 물들인 제 머리를 쓸어넘겼다. 샴푸 코오롱 냄새와 끊지 못한 담배냄새가 섞여 나온 향기가 무척이나 싫었다. 그러다 부스스한 머리지만 가늘고 옅은 종현의 머리카락을 문득 쓸어넘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한 자신도 어이가 없는지 실토를 흘린 태민은 추리닝 바짓주머니에 손을 꼽고 내려와 제 어머니가 퍼준 밥을 맛있게 수저 질하는 종현을 빤히 바라보다 그 앞에 의자를 빼고 털썩 앉았다. 어릴 적 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단둘이 먹었던 저녁 식사가 오늘따라 더 밝아 보이고 분위기가 들떠 있었다. 애교도 없고 무뚝뚝하며 정없다고 신세하탄을 태민이에게 하루종일 연설하던 제 어머니가 저렇게 밝게 웃으며 종현의 밥 위에 생선가시를 골라 얹어 주는 것이 조금 샘이 나기도 하지만 기분 좋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유난히 밥을 느리게 먹는 종현의 수저 질에 맞추던 태민이 울화통이 터져 밥을 크게 퍼서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몇 수저면 뚝딱 할 밥그릇 가지고 벌써 몇십 분째 씨름 중인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벌써 밥을 다 드시고 턱에 손을 괴며 김종현을 빤히 바라보시는데 그런 와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밥을 먹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예뻐 보였다. 눈초리는 좀 쳐진 듯하다가 뒤로 갈수록 눈초리가 살짝 올라가 강아지 같으면서도 여우 같은 눈동자를 하고 있고 콧방울이 동그란 것이 강아지 같다. 입은 또 왜 저렇고 통통하고 붉은 것인지 누구를 꾀려고 저렇게 태어났는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하나같이 김종현은 야하다. 굶주린 늑대 앞에서 유혹하는 야한 강아지 같다는 말이다. 태민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종현을 보는지 여전히 관심 없다는 듯이 묵묵히 수저를 바쁘게 하지만 천천히 움직이는 동선이 귀하게 자라온 아드님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할 만큼 고작 된장찌개에 계란말이 생선을 먹는데 종현은 젓가락질하나도 섬세하게 했다. 밥을 식탁에 흘려가면서 우걱우걱 먹는 태민과 비교되는 모습에 태민의 어머니는 어쩜 저렇게 다를 수가 있지, 하면서 종현에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똑똑하고 예의 바른 아들을 하나 얻은 것 같은 기분이든 태민의 어머니였다. 마지막 수저 질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종현이 잘 먹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그릇도 싱크대에 넣지 않고 나가는 것을 보니 확실히 귀하게 자라오긴 자라왔다고 생각한 태민이다. 밥을 먹자마자 일어나 제방으로 올라가는 종현을 보고 약간 의외라고 생각한 태민의 어머니는 냉장고에서 과일 몇 개를 꺼내더니 선반 위에서 접시를 꺼내고 싱크대수납에서 잘 드는 과일칼을 꺼내어 다시 의자를 빼고 앉은 뒤 과일을 깎아내렸다. 사과 몇 개와 배를 깎고 반으로 예쁘게 포개어 접시 위에 올린 뒤 태민에게 밀면서 종현이 좀 갖다 줘- 라는 소리에 내가 무슨 심부름꾼이야 하고 투정을 부렸지만, 아침밥 없다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접시를 들고 2층 계단을 밟고 올라간다. 올라가면서도 제가 먹고 싶으면 제가 와야지 왜 내가 가야해- 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노크도 없이 들어선 태민이 윗옷을 벗고 있는 종현을 보고 놀라 몸을 뒤로 빼는 바람에 접시 위에서 과일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발에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느낀 태민이 퍼뜩 쪼그려 앉아 떨어진 과일을 접시 위로 담다가 제 정수리에 꽂히는 시선에 고개를 스르르 위로 올렸다. 윗옷을 벗고 상체누드로 쪼그려앉아 똑같이 과일을 접시에 옮겨 담는 종현이 보인다. 목 부분 아래에 깊게 파여 있는 쇄골이 팔을 움직일 때마다 움찔거려서 태민의 손도 움찔거리며 괜히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는데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너, 너 옷 좀 입어. 몸도 좋은 것도 아니면서 왜 벗고 있어." "앞으로는 노크 해주실래요?" 그냥 난 태민이에게 노크 정도는 해달라고 했는데 뭔 상관이야라며 다 주운 과일 접시를 들고 나가버려.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미안해져 과일즙이 묻은 끈적거리는 손으로 바지에 쓱쓱 문지르며 화장실로 들어가 바지 버클을 풀고 벗어서 샤워기를 틀었어. 물론 새 옷도 챙겨서 들어갔지. 연못에 빠져서 계속 이상한 냄새가 나서 더는 참고 있을 수도 없는 마당에 태민이가 냄새가 난다고 할 때 민망했거든. 화장실이 곧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거울을 확인하니 열에 들떠 붉은 내 얼굴에 잠시 눈을 찡그리다 후유- 한숨을 내쉬며 세면대에 두 팔을 짚고 고개를 푹 숙여버렸어. 내 얼굴이 붉어진 이유는 열기로 가득 찬 화장실 안 공기 때문이 아니야. 이건 내 벗은 몸을 본 태민이의 시선에 이미 열로 들떠 있었지. 어쩌면 좋지. 볼이 불에 데인 것처럼 달아오르는 게 뜨거워서 미칠 것 같아. 들뜬 거친 숨을 뱉어내면서 몇 년 만에 보는 민호의 얼굴을 떠올리며 오늘 차갑게 얼어붙은 눈동자와 그 안에는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그 눈은 몇 년 전과 너무나 달랐어. 조급해지지 말자 천천히 다가가자 하면서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나 봐. "민호야…보고 싶어." 화장실 거울 속에 습기로 가득 차 송골송골 맺힌 물방울들이 처량하게 뚝뚝 떨어진다. 그때마다 종현은 제 마음의 불안을 더욱더 상기시키며 얼굴을 찌푸렸다.그 리고 습기로 가득 찬 거울 위로 손을 맞대고 위아래로 지웠다. 그러자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자신의 얼굴…. 종현은 계속해서 거울을 지웠다. 그리고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린다. "지워도 지워도 선명해졌으면 좋겠어. 네마음속에서 나를 지우려고 해도 더욱 선명해져서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 하아하아- 울창한 푸른 숲에서 누군가 앞도 제대로 보지 않고 뛰고 있다. 쫓기는 듯 긴박한 상황 속에서 남자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팔꿈치 아래에 생채기를 남겼어도 작은 신음조차 흘리지 않고 다시 벌떡 일어나 달렸다. 비가 오고 있다. 쟂빛하늘이 흐려지더니 큰 천둥소리와 함께 먹구름이 몰려와 울어버린다. 그 울음을 그대로 받아내리면서 뛰고 있던 남자는 체력이 한계치에 도달하자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여 무릎 위에 작은 손을 올리고 거친 심호흡을 내뱉었다. 숨을 뱉어낼 때마다 입김이 불어 나오는 것을 보니 공간을 배회하는 공기가 매우 시리고 춥다. 남자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이대로 잡힐 수는 없었다. 뒤에서 자신을 집어삼킬 듯한 어두운 무언가가 다가온다. 두려움에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머릿속에는 한 사람만이 떠오른다.우리 민호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자 남자는 다시한번 힘을 주어 자리에서 일어나 달리다 앞에 흐릿한 인영으로 서 있는 사람에 의해서 발을 멈추어버린다. 커브길을 돌다 강하게 멈춘 자동차처럼 그 충격도 만만치않다. 남자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다가 흐릿한 인영이 서서히 다가오자 흠칫 몸을 떨었다. 인영이 말했다. '피해….' '…….' '뒤에 김종현이 당신을 따라오고있어. 당신을 죽일지도 몰라.' '민호야.내가…김종현인데?' '넌 김종현이 아니야.' '그게…무슨소리야.민호야!' 종현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려온다. 분명 제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민호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듯한 파리한 안색으로 서있는 민호는 자신을 죽이려고 따라오는 사람이 자신 이라고 했다. 종현은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그 순간 뒤에서 따라오던 남자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몸을 돌렸다. '!!!!!' "허억! 하아하아…." 악몽을 꾼듯 숨을 조르는듯한 소리를 뱉으며 눈을 뜬 종현은 아직도 그 숲을 달리는것같이 심하게 펌프질하는 제가슴을 부여잡으며 가쁜 숨을내쉬었다.이마에서 식은땀이 묻어나 손으로 대충 닦아낸 종현이 밝은빛이 들어오는 방안을 둘러보다 침대에서 무겁게 짖눌린 몸을 일으켰다.그리고 순간 기우뚱하는 몸에 가까스로 벽을 짚으며 옆에붙어있는 스위치를 눌러 방안을 밝혔다.시계를 확인하자 작은바늘이 7을 가리키고있었고 큰바늘이 11을 가리키고있었다.하루를 지낸결과 이방의 시계가 5분씩늦게 흘러가고있다는것을 깨달은 종현은 8시라는 시간을 확인하자마자 화장실로 빠르게 들어가 세면대의 구멍을 막고서 찬물을 틀었다.물이 반쯤 차자 비누에 거품질을하고 얼굴에 문댄뒤 빠르게 씻어나가며 칫솔을 짚으려는데 짐을 아직 다풀지못한것이 생각이났다. 어제저녁도 양치질을하지않아 입안이썼지만 늦었기때문에 그런 생각은 오래하지못했다.결국 양치질을 포기하고 나온 종현이 무늬목으로 되어있는 갈색 책상서랍속에서 자일리톨껌통을 꺼내 오른손안에 털었다.두어개 나온것을 집어삼킨뒤 제가입고있는 옷을 올려 얼굴을 닦아낸다.입안에서 시원함이 가득퍼진다.어느새 껌을 질겅이며 옷을 다갈아입은 종현이 전신걸음앞에섰다.키는 조금작지만 나름 각선이 멋지게 잡힌 자신을 보다가 입고있는 푸른색과 민트색이 섞인 난방을 만져본다.중학교2학년 4월8일 종현의 생일날 감기도 잘 걸리니 티셔츠 위에 걸쳐입으라며 민호가 준 선물이었다. 그뒤로 애지중지하며 한번도 입지않았는데 오늘 처음으로 입어보았다.세월이 무색할정도로 옷은 크지도 작지도 않고 딱 들어맞았다.키는 조금컸지만 몸이 전보다 마른 탓이었다.억지로 입을 올려 웃은 종현이 엄지손가락을 앞으로 치켜들었다.그리고 노상 똑같은 말을 뱉어낸다. "힘내자,종현아." 스스로 외쳐도 언제나 어색한 말.하지만 이런말은 언제라도 되도록이면 많이 하고싶어.너의 하나밖에없는 꿈이 되기로 난 약속했거든.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S반에 들어가게 된 김종현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스물두 살이고요, 미국에 있어서 아직 반말은 어색해요." "어어?! 너 어제…" 빠른아침, 다들 눈꺼풀이 닫치려고 드는 피곤함에 애써 정신력의 싸움으로 눈을 치켜세우고 있는데 드르륵- 문소리가 들리더니 교수와 종현이 함께 들어온다. 기범은 어제 종현이 어제 그 소년임을알 고 반가움 반 놀라움 반의 반신반의였지만 민호는 휴-한숨을 내쉬며 제 얼굴에 손을 올려놓고 뒷목을 젖혔다. 철용은 그저 종현의 어린 얼굴에 이제 이곳에서 제가 막내가 아닐 거라는 생각에 좋아하다 후에 종현의 나이를 듣고는 말도 안돼…. 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철용의 뒤통수를 세게 내려친 기범이 자리에서 일어나 종현의 손목을 덥석 잡아끌어 당겨 의자에 앉혔다. 종현의 앞에는 새 책상과 노트북 그 외 법의학 서적들이 올려져 있었다. "어제 교수님이 일찍 안 들어가시고 뭘 하시나 했더니 이런 거였네. 너무 차별하는 거 아닌가. 나 들어올 때는 알아서 들어오라고 해놓고서." 기범이 삐진 듯 입술을 쭉 내밀자 교수가 "네가 뭐가 예쁘다고 해줘. 아무튼, 오늘부터 종현이도 이 교실 학생이니까 잘좀 챙겨줘." 말만 하고서 교실을 나갔다. 철용은 제 의자를 끌어서 종현의 앞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바라만 보고 있던 종현이 답답했던 것인지 손수 손까지 끼어 흔들은 철용이 "안녕하세요, 종현선배. 형보다 제가 한 살 어려요. 그러니까 말 편하게 하세요." 하고 방긋 웃었다. "응. 그런데 말 놓는 게 쉽지가 않아서."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뭘. 그런데 민호선배는 인사 안 해요?" 철용이 종현에게 인사를 건넨 후 민호를 돌아보며 말하자 민호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를 빙글빙글돌려 등을 보이게 했다. 얼굴조차 보이지 않겠다는 고집이었다. 그 나름의 고집에 당황한 것은 종현을 제외한 철용과 기범이었고 적장 본인은 의연한 태도를 보인다. 쯧쯧- 혀를 차며 교수가 나가고 평소 말이 없고 근엄하며 인사성은 개싸가지인것은 알고 있으나 첫대면에 이렇게 사람을 대놓고 무시하는 민호의 태도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이든 기범이었다. 저나 철용이 들어왔을 때는 그래도 인사 정도는 나누었으니 말이다. 생각이 길면 고민이 늘어난다. 고로 기범은 곧 생각을 접고 이번 피해자의 사인과 출력해둔 내용을 종현에게 넘겼다. 검은색파일을 받아 이리저리 살펴보던 종현이 곧 몇분 가지 않아 책상 위에 탁 내려놓았다. 읽기 귀찮다는 말인가…. 기범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종현이 꾀나 미스터리하긴하군요- 라는 중얼거림을 듣고는 놀라 물었다. "너, 너 이거 다 읽었어?" "네." "하나도 빠짐없이?" "당연하죠. 하나라도 빠트리면 안 되잖아요." 말도 안돼…단 몇 분 안에. 그 의심을 저버릴수없는지 기범이 크흠- 목을 가다듬고 종현의 앞으로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것에 답해. 피해자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직업은?" "이름은 구지성,나이는 48세.직업은 자동차 정비소에 오전 근무를 하고 철야에는 가끔 막노동을 하고있음. 부인하고는 3년 전 결별." 묻지도 않는 내용을 줄줄이 내뱉자 기범이 긴장하여 땀이 찬 손을 바지에 쓱 닦아내며 마른침을 삼켰다. 범죄 미스터리 사건 영화를 보는 것보다 더 긴장감이 넘쳐흐른다. 물론 기범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인은?" "전두골이 함몰 골절되었고요 전두골에 받은 충격은 약 10cm 높이에서 30kg 정도의 낙하물에 맞은 것으로 보임. 사인은 그 충격에 의해 일어난 경추골에 의한 골수손상 아니에요?" "……." "으음- 종현선배 똑똑하시네요." 종현의말에 할말을 잃은 기범의 뒤로 머그잔 잔을 들고 나타난 철용이 말했다. "야! 이게 똑똑한 수준이야? 완전 천재지 천재." 기범이 흥분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말하자 철용은 한심한 듯 혀를 쯧쯧 차며 두 눈을 감고 목을 뒤로젖혀 어느새 잠들어 있는 민호를 가리킨다. 그리고 철용의 입에서 나온 말에 기범은 저가 과연 법의학을 공부하고 당당히 재수생활 없이 합격한 인간이 맞는지 스스로 의심이 되기 시작했다. "민호선배도 종현선배처럼 한번 읽은 내용은 잊지 않잖아요. 전에 신입생 환영회 때 민호선배가 신입생들 엄청 기죽이고 돌아섰던 그 일을 전 아직도 기억하는데…. 철용이 쥐고 있던 머그잔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기범도 그 일을 알고 있었다. 때는 대학교 2학년. 1학년 때는 멋 모르고 선배들 틈새에서 빌빌거리기만 했지만 2학년이 되어서는 꽃피는 소개팅과 미팅은 기본베이스로 깔아주시고 나이트에 클럽까지 완전 제세상이었다. 그리고 신입생환영회 때였다. 봄 햇살이 한들한들 불어오고 흩날리는 꽃가루에 재채기를 하고 있을 무렵 신입생 대표와 과 대표가 가볍게 환영회를 이끌어가고있었다. 그리고 당시 2학년 대표였던 민호가 대학생의 들뜬 마음을 한번에 머나먼 시공 속으로 떨어뜨린 말은…. "대학에 들어온 것은 환영하지만, 신입생이라고 돈을 안내는 건 얄짤없다. 복부, 액와, 심장, 생식기, 서해부, 입, 골반, 신장, 제대(배꼽), 척추, 회음부, 요부, 코, 위, 폐, 적혈구, 백혈구, 동맥, 정맥, 신경, 척수, 뇌, 갑상선, 항문, 기관, 모세혈관.정확히 몸의 부위에 적혀있는 의학서적을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다. 지금부터 1분안에 다 외우는 사람은 이번에 돈을 내지않도록하지. 난 이 순서를 30초 만에 알았으니 더는 시간은 줄 수 없어." 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때 얼마나 골이때린던지. 신입생들은 긴장에 똥줄을 탔지마는 난 한심스러웠다. 그까짓 순서 따위 뭔 상관이라고. 하지만 그렇지않았다. 신입생 첫 해부학 시험날 당당히 문제 1번을 차지하고 나왔던 문제였던 것. 그 자리에 있던 신입생들은 그때부터 민호를 사람이 아닌 신으로 추앙했다고 한다. 그때의 신입생에 철용도 물론 있었고 말이다. "아무래도 사건 현장을 가보는 게 어떨까요?" 훌쩍훌쩍- 머그잔 잔을 조심스럽게도 아닌 유난스럽게 비운 철용이 기범에게 다가가 물었다. 기범은 물론 그럴 생각이었지만 민호가 말썽이었다. 분명히 귀찮다고 사건 현장은 무슨 사건 현장이라며 호통을 칠 것이 뻔했다. 기범이 눈치를 보며 민호에게 다가가자 굳게 감겨 있던 민호의 두 눈이 떠지더니 제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에 더 기가 죽은 기범이 말할까 하지말까 고민하는 사이 민호의 말이 먼저 나왔다. "현장을 조사하는 건 경찰이 할 일이야. 일부러 가지 않아도 자료를 보고 상상하면 되잖아." "그래도 사건 현장을 가보면…." "그러려고 해부해서 그런 방대한 데이터를 뽑은 거야? 데이터로 충분하다고. 정 가고 싶으면 가도 좋아. 하지만 흥미본위로 관여하지 않는 게 좋을꺼라고 생각해. 그런 짓 한다고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야." "아, 진짜 됐어. 역시 두뇌가 뛰어난 최민호씨 한테는 귀찮은 일이겠지. 너희도 따라올 얘들은 따라오고 아니면 오지 마." 기범이 드디어 틀어져 버렸다. 언젠가 벼르고 별었던 최민호와의 트러블이 발단을 못 이겨내고 위기를 맞이했다. 싸늘하게 흐르는 긴장감에 철용은 "저도 이만…." 외투를 가지고 일어나 기범을 따라나섰고 교실 안에는 민호와 종현 단 둘뿐이었다. 종현은 어째서 민호가 저렇게 매사에 의욕이 없을까 안타까운 생각을 했다. 졸린 달팽이보다 더 느리게 흘러가는듯한 시간에 종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민호 앞으로 섰다. 그리고 고동색 민호의 눈과 만났을때 주먹을 꽉 쥐어버린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애써 참아냈다. 최민호 앞에서 김종현이 도망칠 이유는 없다. 그것뿐이다. "민호야. 얘기좀 하자." "처음 보는 사람한테 무슨 할 말이 있어서 그런건지 몰라도 당신도 김기범 따라가려면 얼른 가는 것이 좋을거야." "계속 그렇게 모른척할 거야?" "교실 불은 네가 꺼." 종현의 말에 답을 해주기는 커녕 다른 말로 돌려버리고는 자리에 일어선 민호가 교실을 나가버렸다. 빈 교실에서는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고요하게 울릴뿐이었다. 고요하고 조용하다. 그래, 언젠가 최민호에게도 김종현에게도 고요하고 조용해질 날이 찾아올 것이다. 종현은 그리 믿고 싶었다. 06 "생각보다 낮은걸…." "저도 10센티라면 좀 더 높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기범과 철용은 사건이 일어난 장소로 오자마자 피해자가 떨어진 거리의 높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런 둘의 뒤로 종현은 등 뒤로 감추었던 꽃다발을 하얀 분필처럼 시신을 그린 그 자리에 올려두었다. 상황을 정리했다지만 아직 그 자리에는 피로 얼룩진 흔적이 있었고 냄새 또한 여름이라 그런지 역하게 올라왔다. 종현은 7년 전 자신 앞에서 죽어가던 남자가 떠올랐고 입술을 질끈 물면서 피해자가 죽은 그 자리에 서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확실히 낮았다. 피해자는 이 자리에서 30kg의 무언가를 맞아서 죽은 것이다. 도대체 무엇에 맞고 죽었을까? 사건 당시 주변에는 무언가 사람을 죽일만한 물체는 없었다. "이 정도로 조용한 장소면 조그만 소리가 나도 위를 보지 않아요? 그렇다면 더더욱 낙하물을 눈치채고 피할 것 같은데…." "가까이 올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지." "게다가 긴 물건이라면 아무리 빨리 눈치채도 맞을 것 같은데요?" 종현이 이곳에 올 때부터 조용하다고 생각했다. 땅까지 늘어진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내고 지져 기는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작은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을까- 하는 말에 기범은 가까이 올 때까지 눈치채지 못하였을 수도 있다고 하였고 철용은 긴 물건이라면 아무리 눈치가 빨라도 맞을 것이라고 하였다. 긴 물건이라…. "그렇다면 피해자가 맞고 나서 지면에 떨어진 거겠죠? 그런데 보고서에도 없었고 그런 자국도 못 찾겠어요." 철용이 투덜투덜 되면서 백 팩에서 보고서를 한 창 한 장 넘기며 말했다. 그에 기범은 그만 좀 투덜되라면서 철용을 밀쳤고 종현은 잠시 제 입가를 만지다가 기범에게 물었다. "저기요, 피해자가 발견됐을 때 어디 있었다고 했었죠?" "빌딩의 옆 분에 있는 화단을 향해서 엎드린 자세. 무릎을 꿇고 팔을 뻗은 채로 의식을 잃었다고." 종현에게 말한 뒤 잠시 자신의 한 말을 생각하더니 기범이 턱짓으로 철용을 화단 앞으로 시선을 보내었다. 철용이 모르겠다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거리자 눈썹을 찡그리며 기범이 화단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빨리 안 따라 해?" "예? 제가 하는 거에요?" "왠지 그런 거 잘할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런 거 잘할 것 같은건 도대체 뭔데요?! 아, 진짜 형은 만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해요. 종현이형도 있잖아요!" "야야- 종현이가 너랑 같아, 어?! 빨리 안 따라 해?" 꼭 제가 김기범의 셔틀이 된 듯한 철용은 체념하면서 건물 앞에 있는 화단 앞에서 두 손을 뻗고 무릎을 꿇었다. 저가 생각해도 정말 웃긴 자세인데 뒤에서 보고 있을 두 선배를 생각하니 철용의 얼굴이 붉어졌다. 뻗은 두 손도 이제 힘들어져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도대체 피해자는 이러고 여기에 왜 있었던 거야?! "최초 발견자의 증언. 멀리서 보면 마치 기도를 하고 있는 듯했다." "확실히 이상한 모습인걸…." 종현이 노트에 적은 내용을 읽어내리자 기범은 확실히 이상하다며 얼굴을 찌푸리고 생각을 하다가 모르겠지만 제 머리를 마구마구 흩트려놓더니 종현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가까이 가서 말을 걸었더니 의식은 있었으나 말을 못하고 표정은 미소를 짓고 있는 듯 보여서 놀랐다." "웃어!!!" 웃으라고요?! 라고 물어보는 철용에게 기범은 네가 만날 실없이 잘하는 거잖아- 라면서 손가락으로 입가를 가리켰다. 그에 씩- 바보같이 웃어버리는 철용이었다. 아…. 정말 모르겠다- 라면서 기범은 배가 고프다며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종현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 자세로 부동하고 있던 철요은 어, 어?! 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다 쥐가 났는지 다시 주저앉으며 울상을 지었고 둘은 이미 저 멀리 사라지고 없었다. "역시 종현이형도 같은 과였어. 두고 보자고, 이 망할 놈의 선배들." 철용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배신 받았다는 눈빛을 했다. "너희들 법의학이 뭔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냐? 현장에서 추리놀이하고 있을 여유가 있으면 해부 순서나 외워. 분석한 데이터가 구멍이 날 정도로 보고 논물을 철저하게 읽어!" 쾅- 하고 닫히는 문소리에 철용이 어깨를 떨며 저놈의 노처녀 히스테리- 라면서 짜증을 부렸다. 점심에 나간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하여튼. "수확이 아무것도 없네요. 결국, 데이터가 전부긴 하지만요. 그런데 종현이형, 어디 가려고 준비를 해요?" "좀 신경 쓰이는 곳이 있어서." "너도 참 끈질기다. 아까 그 늙은 마녀 소리 못 들었어?" "그래도 정말 신경이 쓰이는 곳이 있어서 그래요." "그건 그렇고 나한테는 왜 존댓말이야. 철용이한테는 말 놓으면서." 삐졌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기범은 입술을 내밀자 종현은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사실 철용에게도 말을 놓기 어려운 종현이었다. "알았어요. 아니, 알았어. 이제 말 놓을게. 그런데 어색하지 않아?" "뭐가? 하~나도 안 어색해. 완전기분 째지는데? 네 얼굴로 나한테 말까지 않놓으면 나 완전 늙은이로 본다는 말이야." "맞아요. 기범이 형이 얼마나 늙은…. 아, 때리지 좀 마세요!" "개기지 말고 조용히 넌 찌그러져 있어." 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상황을 지켜보다 종현은 웃으며 조용히 교실을 나왔다. 종현이 향한 곳은 피해자가 다녔던 직장인 정비소였다. 멀리서부터 차 기름내와 머리를 어질 거리게 하는 쇳소리가 들려왔지만 종현의 머릿속에는 오직 피해자의 사건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던 종현은 찌그러진 차 밑에서 정비를 하는 한 남자에게 다가가 무릎을 구부리고 쪼구려 앉아 말했다. "저기요. 말씀 좀 부탁 드려도 될까요?"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말에 남자는 바퀴가 달린 판자를 밑으로 끌면서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흐르는 땀을 닦아낸다. 말쑥한 그것도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어린 학생이 자신에게 무슨 할 말을 하러 온 것인지, 의문이었는지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차 밑으로 나와 일어났다. "무슨 일로…." "아, 구지성씨를 아시나요? 이번 사건을 전담하게 된 연세대 해부학과에서 왔습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죠." 작은 정비소 안에는 따로 사무실 같은 것이 있었다. 뜨거운 여름의 정비소라서 그런지 종현은 더위를 참지 못하고 부채질을 해버리자 남자는 쿡 웃으며 미니 냉장고에서 작은 병의 음료수를 종현에게 건넸다. 꾸벅 고개를 숙이며 받아든 종현이 목을 축이며 입을 열었다. "좀 이상한 질문이긴 한데요. 혹시 그분 반사신경이 나빴나요?" "그건 모르지." "그렇네요." 남자는 종현에게 머물러 있던 시선을 돌려 작은 티브이 속에서 나와 생중계되는 야구를 보면서 말했다. "특별히 운동치로는 안보였는데 말이야. 그러고 보니 같이 한잔하러 갔을 때 술집에서 야구 중계가 시작되니까 티브이 좀 꺼달라고 부탁하더라고. 그래서 다른 손님하고 한 번 다툰 적이 있어." 남자는 그때 상황이 떠오른 것인지 몸을 부르르 떨며 옷소매를 들어 얼굴을 닦아내었다. 그때 얼마나 정색을 하면서 티브이를 꺼달라고 하던지, 야구를 정말 싫어하는 것을 넘어 증오수준이었다고 남자는 느꼈다. "야구인가요…." 조금 남은 음료수를 들이켠 종현이 가보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앗싸! 오늘은 기범이 형이 밥 쏘는 거죠? 저는 오므라이스하고, 돈가스 정식, 그리고…. 아." "하나만 먹어 이 자식아! 클 나이도 지났는데 뭘 그렇게 시키고 있어. 종현아, 넌 더 시켜도 돼." "왜 종현이형만 편애해요?" "종현이는 덜 컸잖아, 이놈아. 넌 클 만큼 컸어." 기범은 자리에 앉자마자 테이블 위에 젓가락, 수저를 내려두라는 명령을 철용에게 내린 뒤 음식주문을 하려는 철용을 제지하며 간단히 모두 볶음밥 네 개를 시키고 자신이 좋아하는 군만두를 시켰다. 그러자 치- 입술을 내밀면서 고작 분식점에 와서 쪼잔하게 군다며 철용이 토라지자 그런 넌 먹지 말라며 젓가락을 뺏어 아들자 금방 철용이 숙으려 든다. 종현은 분식점에 들어서고 나서 멍하니 넋을 놓고 티브이만 보고 있었다. 한창 야구를 보던 종현이 서빙하던 아주머니가 리모컨을 들고 요즘 한창 유행하는 범죄 스릴러 드라마 '범인은 이 안에 있다' 라는 프로그램으로 채널을 돌리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분이 야구 때문에 싸웠다고 하잖아. 어째서 야구를 싫어한 거지?" 어제 피해자의 직장을 갔다 온 뒤, 얘기를 다 해둔 뒤였기 때문에 기범도 "그러게 말이야. 난 축구보단 야구." 라면서 말했다. 그러자 철용이 옆에서 "어째서 야구가 먼저예요! 축구가 최고죠. 한국 하면 박지성이잖아요." 라면서 또다시 서로 붙기 시작했다. "박지성은 무슨…한국 하면 이승엽이지!" 역시 동생에게 쉽사리 패배를 인정할 수 없는 기범이었다. 민호는 물수건으로 손을 닦아내며 종현을 바라보다 이내 얼굴을 돌린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손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이번 사건하고 비슷하지 않아? 이마에서 턱에 걸친 분쇄골절. 피해자의 두상에 이십 킬로 상당의 철골을 떨어뜨리고 범행 후 가져감. 상당이 비슷한걸…." 반찬으로 나온 어묵볶음을 입안에 빠르게 나르던 기범이 티브이를 보며 말했다. "역시 건설현장의 자재가 흉기로 쓰인 걸까요?" 철용이 이제 나온 따듯한 볶음밥 위에 케첩을 쭉 짜며 말했다. "하지만 감식의 조사로는 자재에서 사건 가능성의 반응은 안 나왔다는데." "있지, 이마 함몰 외에 골절이 있는 부분이 어디였지?" 기범이 분명히 감식반의 말을 되새기며 말하자 종현이 이제 제법 말을 놓고 기범에게 묻듯이 물었다. 기범은 생각이 안 나는지 눈을 찡그렸고 철용은 밥에 신경이 쏠려 있어서 그런지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때 생각 밖의 인물인 민호가 입을 열고 종현에게 말했다. "코뼈랑 쇄골, 경추 그리고 좌우전완부의 척골." "좌우 전완부의 척골…. 척골이라면 이쪽??" 자신의 손가락중지 밑의 뼈를 가리키다 팔꿈치보다 아랫부분의 팔부분을 보다 화단에 부딪쳤다고 생각할만한 타박상도 남아있음을 떠올린 종현이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어째서 바깥부분이지? 낙하물에서 도망가려 한 사람이 팔뚝의 바깥부분을 밑으로 할까?" "무슨 말이야?" "위에서 물건이 떨어지면 어떻게 도망쳐? 손바닥을 위를 보게 해서 도망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확실히 이상한걸." 기범도 덩달아 심각해지자 종현은 생각에 빠졌다. 분명히…. [가까이 가서 말을 걸었더니 의식은 있었으나 말을 못하고 표정은 미소를 짓고 있는 듯 보여서 놀랐다. 부인이 있었다는 것도 경찰한테 듣고 처음 알았어. 과거에 대한 건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아 했으니까 말이야. 그러고 보니 같이 한잔하러 갔을 때 술집에서 야구 중계가 시작되니까 티브이 좀 꺼달라고 부탁하더라고. 그래서 다른 손님하고 한 번 다툰 적이 있어.] "받고 싶었던 거야." "받아? 야, 김종현!!" ---- 계속...